에필로그
“애들아 자기 전에 책 읽자. 각자 읽을 책 두 권씩 가져와!”
아이들이 어렸을 때 저녁 먹고 자기 전 마지막 할 일이었다.
세 아이는 각자 두 권씩 책을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서로 자기가 고른 거 먼저 읽어야 한다며 작은 소동이 일어났지만
매일 순번은 자기들끼리 잊지 않고 잘 정했다.
막내가 1학년 때였다.
도서관에서 빌려 놓은 ‘엄마 까투리’ 책을 읽어달라고 가져왔다.
누나, 형들이 고른 책 다음으로 ‘엄마 까투리’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전에도 몇 번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그날은 왜인지 모르게 엄마 까투리가 산불로부터 새끼를 보호하고 죽었던 장면에서
갑자기 “엉, 엉, 엉, 엄마…엉, 엉, 엉” 하면서 통곡수준으로 울었다.
우리는 울고 있는 막내가 너무 귀여워서 박장대소를 했다.
그리고 막둥이를 꼭 안아주었다.
아직까지 막둥이 아들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때였던 것 같다.
갑자기 나의 어린 시절 타조가 생각이 났었다.
알을 품다가 발견한 빼빼 여윈 타조가.
추억의 퍼즐 조각을 꺼내 맞추면서 아이들에게 엄마의 ‘타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이들은 환호했었다.
그러면서 아이들은 엄마의 어린 시절 더 재미난 이야기를 해달라고 재촉했다.
그날 이후로 여러 소속된 독서 모임에서 타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면서 타조 이야기를 글로 써보고 싶은 마음이 들기 시작했었다.
글의 윤곽을 생각해 놓고 엄마와 언니와 오빠들이 모인 자리에 우연히 타조 이야기를 꺼냈다.
그런데 실제 쌍둥이 언니는 타조는 기억조차 못 하고 있었다.
같은 날 태어나서 어린 시절 항상 함께 했었고 나보다 5분 먼저 태어난 언니였는데 말이다.
골목에 늘어선 해바라기만 기억할 뿐이었다.
누런 똥강아지 말고도 내가 ‘롯띠’라고 이름 지어준 윤기 나는 까만색의 늑대처럼 큰 개도 기억하지 못했다. ‘롯띠’가 없어진 이후로 다시 데려온 ‘롯띠’와 거의 비슷하게 생겼던 ‘로피’는 말해서 무엇하랴?
엄마도 처음에는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지만, 건초에서 아빠가 꺼낸 알들,
그리고 집 안 곳곳을 돌아다녔다는 것을 오빠의 보충 설명을 듣고서야 기억해냈다.
그러면서 마지막 건초 더미 깊숙이 비닐 안에서 꺼낸 타조를 뚜렷이 기억하고 계셨다.
빼빼 야윈 타조가 아무도 모르게 비닐 덮인 건초 깊숙이에서
알을 품고 있다가 엄마에 의해 발견되었던 것이었다.
엄마가 발견하지 못했다면 타조와 알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런데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첫째 오빠가 덧붙이면서 말했다.
“그건 타조가 아니야, 칠면조야!”
“아니야 내가 기억하는 건 타조야”
내가 강력히 반박했다.
오빠의 말을 듣고서야 엄마도 숨 쉴 때마다 목에 걸친 붉은 피부가 벌렁거렸던 것이
‘칠면조’인 것 같다고 말해주었다
“아마도 네가 어린 꼬마라서 타조처럼 크게 보였나 보다.
그래 타조 하자. 그러나 그건 칠면조야.”
오빠가 웃으며 말을 마무리했었다.
그런데 실제 둘째 오빠가 한마디 덧붙었다.
“수박 서리가 아니라 실제로는 딸기 서리였다.”
우리 모두 한참을 크게 웃었다.
‘왜 나는 수박 서리로 기억하고 있었을까?’
뒤뜰의 석류나무에선 매년 어른 주먹보다 큰 석류가 열렸다.
아빠는 석류를 큰 소쿠리에 한가득 따놓고 벌어진 석류 알을 우리에게 먹여주었다.
아직까지 그 알알이 박힌 석류 알이 생각나면 입안에 새콤한 맛이 느껴진다.
어린 시절의 추억을 소환하면서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누구의 기억엔 생생한 것을 누구는 기억조차 못 하고 있기도 했다.
같은 공간 같은 시간을 보내왔던 형제자매 관계였는데도 말이다.
내 기억 속에 너무 생생하게 자리 잡은 타조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어 감사하다.
아빠가 데려와 마당에 풀어 놓은 타조(칠면조), 해바라기 사이에서 놀고 있는 모습,
아빠의 손안에 가득한 타조 알,
건초더미 깊숙한 곳에서 발견하여 빼빼 야윈 타조는 내 기억 속에 영원할 것 같다.
그 타조가 다시금 책 안으로 등장해줘서 반갑기 그지없다.
“타조야 다시 만나서 반가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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